日, 필리핀서 미사일 발사 훈련...신군국주의 속 울려퍼지는 “역사의 경종”

한국어 |  2026-05-12 10:13:57

包春玲来源:신화통신 한국어 뉴스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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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月 6 日,日本自卫队在菲律宾吕宋岛发射导弹,系二战后首次海外发射攻击性武器。此举被指意在将菲变为日本新军国主义战略前哨。历史上,日军曾于二战期间占领菲律宾,制造马尼拉大屠杀等惨案,致百万人丧生,将“东方巴黎”化为废墟。如今日本重提军事行动,再次引发对日本极东战争罪行及军国主义复活的警惕与谴责。

[신화망 마닐라 5월12일]지난 6일 필리핀 루손섬 북부 파오아이 해변.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본 자위대가 88식 지대함 유도탄 2발을 발사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료 이후 일본이 해외에서 공격형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80여 년 전 일본군은 필리핀을 침략하고 점령한 3년여의 시간 동안 조직적인 폭행을 저질렀다. 100만 명 이상의 필리핀인이 포화, 학살, 기근으로 목숨을 잃었으며 '동양의 진주'라 불리던 마닐라는 초토화됐다.

지난해 6월 28일 마닐라 필리핀 국립미술관의 제2차 세계대전 테마 전시실을 관람하는 참관객들을 휴대폰 사진에 담았다. (사진/신화통신)

오늘날 일본 자위대가 다시 총포를 들고 필리핀에 돌아온 것은 필리핀을 일본 신군국주의의 전략적 전초기지이자 군사 실험장으로 만들려는 획책이다.

◇'비무장 도시'의 역사적 상흔

마닐라 시내 중심에는 1945년 마닐라 대학살 당시 일본군에게 참혹하게 살해된 민간인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서 있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1945년 마닐라 전투 기념비'. (사진/신화통신)

태평양전쟁 발발 전 경제적 번영과 문화적 다양성을 자랑하던 마닐라는 일본의 침공으로 지옥으로 변했다.

1941년 12월 8일 진주만을 공습한 일본군은 몇 시간 후 빠르게 마닐라로 진격했다. 이에 12월 26일 민간인 희생을 줄이고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필리핀 당국과 미군은 마닐라를 '비무장 도시'로 선포했다.

하지만 일본군은 이를 무시하고 폭격을 지속하며 학교, 병원, 역사 건축물을 폐허로 만들었다. 투항한 군인들은 잔인하게 처형당했고 수많은 민간인이 '전시 법령 위반'의 죄목으로 재판도 없이 살해됐다.

1945년 2월 3일~3월 3일 마닐라에선 태평양전쟁에서 가장 처절했던 도시 전투 중 하나가 벌어졌다. 진격해오는 연합군에게 궁지에 몰린 일본군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다. 1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일본군의 총칼에 죽임을 당하거나 산 채로 불태워졌다.

한 제2차 세계대전 종군 기자는 당시의 마닐라를 '악몽 같은 공포로 가득 찬 도시'로 기록했다.

◇일본의 극동 전쟁 만행

1942년 4월 일본군은 필리핀에서 태평양 전장의 가장 악명 높은 침략 범죄 중 하나인 '바탄 죽음의 행진'을 자행했다. 이는 난징(南京) 대학살, 태국-미얀마 죽음의 철도와 함께 '극동 3대 전쟁 만행'으로 꼽힌다.

지난 2월 9일 필리핀 카파스시 오도넬 수용소 옛터 안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오벨리스크. (사진/신화통신)

당시 미·필리핀 연합군은 바탄 반도에서 일본군에게 항복했다. 이에 약 7만8천 명의 전쟁 포로가 폭염 속에서 바탄 반도 남부에서 120㎞ 떨어진 오도넬 수용소까지 행군해야 했다. 가는 길에 음식, 물, 의료 지원도 거의 제공되지 않았으며 포로들을 뙤약볕 아래 장시간 서 있게 하여 일사병으로 쓰러지게 만드는 일까지 자행했다.

역사학자들은 행군 도중 최대 1만5천 명이 사망했고 이후 수용소 구금 과정에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공동 번영'의 거짓 아래 펼쳐진 연옥

필리핀 국립미술관 제2차 세계대전 테마 전시실에 전시된 20여 점의 그림은 당시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하고 있다. 살해된 민간인, 앙상하게 마른 전쟁 포로, 초토화된 들판... 이는 일본군의 야만적인 침략 아래 놓였던 인간 연옥을 보여주며 일본이 내세웠던 소위 '대동아공영권'의 거짓을 폭로한다.

태평양전쟁 기간 일본군이 필리핀에서 약탈한 식량을 전방으로 보내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일본군 점령기 동안 필리핀에선 잔혹한 식민 약탈과 고압 통치가 벌어졌다. 식량 탈취, 광물 약탈, 강제 노동 동원으로 곳곳에는 물자 부족과 기근이 만연했다. 식민 교육을 추진하고 일본어 동화(同化) 교육을 강제하며 현지 학교를 폐쇄하거나 노예화 교육의 도구로 삼았다. 위안부를 강제 동원하여 현지 여성들을 대상으로 조직적·제도적인 성노예화를 단행했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1942~1945년 약 1천 명의 필리핀 여성이 위안부로 강제 동원됐다.

2017년 12월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는 동상이 마닐라에 세워졌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외교적 압력으로 해당 동상은 설치 4개월 만에 철거됐다.

2017년 12월 8일 마닐라에서 포착한 제2차 세계대전 위안부 동상. (사진/신화통신)

수년 동안 현지 여성 단체들은 일본 정부에 역사적 죄책을 직시하고 침략 죄행을 반성하며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해 왔지만 일본 측은 정면으로 응답하지 않고 있다.

◇현실에서 울려 퍼지는 역사의 경종

올 4월 20일부터 5월 8일까지 진행된 미·필리핀 연합훈련 '발리카탄' 기간 일본 자위대는 기존의 '참관' 방식에서 벗어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작전 부대를 파견해 실전 훈련에 참여하고 해외에서 최초로 공격형 미사일을 발사했다.

군사 훈련 시작 당일 수많은 민중이 필리핀군 본부 밖에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지난달 20일 필리핀 군본부 밖에서 '외국군 철수'가 적힌 피켓을 손에 들고 미·필리핀 연합훈련 '발리카탄'에 항의하는 시위자. (사진/신화통신)

필리핀인들은 과거의 침략자가 필리핀을 군비 확충, 전쟁 준비, 지역 혼란의 '전초기지'로 삼으려 한다고 보고 있다.

허먼 티우 로렐 필리핀 아시아세기 필리핀전략연구소(ACPSSI) 소장은 "일본 작전 부대의 필리핀 본토 복귀는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결과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일본의 신군국주의가 아시아태평양 평화·안정·번영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면서 일본이 일찍이 필리핀에서 저지른 수많은 죄행이 잊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원문 출처:신화통신 한국어 뉴스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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